‘인생은 소설이다.’ ‘인생은 항해다’. ‘인생은 운이다.’ 저마다 인생을 정의하곤 합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철학가인 프랭클린 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제목이 ‘빈 자루는 똑바로 설 수 없다’입니다. 이 제목을 인생으로 적용해서 ‘인생은 빈 자루와 같다’라고 정의해 보면 어떨까요?
빈 자루가 있습니다.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자루입니다. 이 자루는 홀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자루가 설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무언가로 가득 채워질 때입니다. 사람들은 이 인생이라는 자루에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열심히 돈을 채웁니다. 명예와 권력도 채워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가득 채워서 인생의 자루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채우면 진정 인생이 서게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돈도 채우고 명예도 채웠지만 서 있지 못하고 주저 앉는 단면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고 경험하며 삽니다. 그러니 정답이 아닌 듯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질그릇에 비유합니다.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이지요. 결국 질그릇의 비유는 우리가 스스로 서려 하지만 결국 설 수 없는 자루와 같은 존재라는 것과 같은 의미임을 말해줍니다. 질그릇과 자루는 나약한 인생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동일한 특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에 보배를 채운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이요, 자루와 같은 인생입니다. 연약한 인생입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인생입니다. 늘 깨지고 무너지는 인생입니다. 그런 질그릇과 같은 내 안에, 자루와 같아 스스로 설 수 없는 내 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보배로 인해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일어서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며 하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정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은 자루와 같아서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아무리 채워보지만 결국 무너지고 깨지고 주저 앉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안에 계시니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능력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어둠과 절망의 자리에서도 올곧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채워진 삶, 그 삶에 당당한 일어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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